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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악명높은 철학서 <<존재와 시간>>을 가지고,

 

'죽음'에 관하여 논하는 두 번째 글 <죽음에 대한 고찰 - 47절 / 48절> 시작하겠습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중요한건 한줄 한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단 전체의 뉘양스를 파악하는게 중요하기에

이를 기반으로 같이 공부해 봅시다.

 

[목차]

 

1. 47절 : 타인의 죽음의 경험가능성과 전체 현존재의 파악가능성

 - 타인의 죽음에 대한 관찰의 필요성

 -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고찰

 - 죽음의 각자성

 

2. 48절 : 미완, 종말, 전체성

 

**가독성을 위해 평어체로 썼습니다.


1. 47절 : 타인의 죽음의 경험가능성과 전체 현존재의 파악가능성

 (1) 타인의 죽음 관찰의 필요성

 

 앞서 우리는 현존재(Dasein)에 대해 공부했다. (현존재 :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존재 물음을 던지는 존재')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 이라는 사건을 현존재로서 맞이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죽었을 때 현존재일 수 있는가?

 

하이데거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죽었다는 것은 결국 생물학적으로 모든 감각기관의 작동이 중단된다는 뜻이며

이는 곧 관찰과 이해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죽었을 때 스스로 현존재로서 남아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관찰/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을 관찰해야함을 알 수 있다.

 

 (2)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고찰

 

 우리는 심심치 않게 타인의 죽음을 목격할 수 있다. 

직접적인 목격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타인의 죽음은 빈번하다.

이러한 점에서 타인의 죽음이라 함은 일상성을 가진다.

 

상상해보자. 눈 앞에 시체가 놓여있다.

눈 앞의 시체는 사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뭐. 조금 꺼림직하긴 하지만 사물이라 함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움직이는 것(생명활동을 하는 것)을 동물이라 칭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사물이라 칭한다면

시체는 사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타인의 사망에서 우리는 '한 존재자가 현존재로 부터 현존재가 아님으로 전환되는 존재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존재가 아님으로 전환된 그 타인의 시체를 단순한 사물로 본다고 하기에는

아까의 시체에 대한 꺼림직함의 연장선상으로서, 타인의 시체는 특별한 *배려의 대상이 된다.

 

*하이데거의 이론에서 배려와 심려의 용어가 등장하는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배려 : 우리가 사물에 대해 마음쓰는 것.

심려 : 우리가 사람에 대해 마음쓰는 것.

 

따라서 우리가 죽은 타인을 배려의 대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물이므로.)

그러나, 이러한 배려의 방식은 여타 일반적인 사물의 배려 방식과는 한 차원 다른 행동양식을 보인다.

휴대폰, 볼펜, 종이, 컵 등을 대하는 배려와 시체를 대하는 배려는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례 / 화장'등의 풍습이 존재하는 모습을 보면,

일반적인 사물을 대하는 방식과 시체를 대하는 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사물로서 본다면, 시체는 그냥 버리거나 치우면 될 일이다.)

 

이는 곧, 시체는 일반적인 사물과 달리 특별한 배려의 대상임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들을 '애도/추모' 함으로서 

이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더불어 있을 수 있다.

즉, 그 순간만큼은 죽은 타인은 심려의 대상이 된다.

 

 (3) 죽음의 각자성

 

 앞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과 같을 수 있는가?

 

우리가 타인의 죽음으로 부터 상실을 경험할 수 있을 지언정,

실제 죽음으로 겪는 상실은 이러한 상실 그 이상일 것이다.

 

즉, 우리는 절대로 타인의 죽음으로 부터 나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현존재의 완결성과 전체성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끌어오는 것

하나의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전제는 "현존재가 다른 현존재를 대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현존재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타인의 현존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믿음" 을 말한다.

 

하이데거는 이 전제를 전적으로 비판하며, 죽음은 대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른 활동들은 대신 가능하지만 죽음 만큼은 대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죽음의 각자성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서 그의 죽음을 빼앗을 수 없다)

 

정리하자면, 하이데거는 처음에 죽음을 고찰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관찰했으나

죽음이라는 것은 다른 현존재로 부터 대치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금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찰해야하는 시사점을 준다.

 


2. 48절 : 미완, 종말, 전체성

 

생각해보자.

'인간은 완성될 수 있는 존재인가?'

 

예를 들어, 

 

설익은 사과는 아직 미완의 상태이다.

시간이 지나 빨갛게 잘 익은 사과는 완성된다.

 

만월이 되기 달은 아직 미완의 상태이다.

시간이 지나 만월이 되었을 때 달은 완성된다.

 

하지만

 

현존재는 아직 항상 미완이다.

시간이 지나 죽음에 도달할 때 현존재는 완성되는 동시에 모든 가능성이 박탈된다.

 

따라서 기본적인 사물들의 존재양식과 현존재의 존재양식 다르다.

사물은 미완에서 완성 상태로 실현될 수 있지만

현존재는 항시 미완이며 완성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이 박탈된다.

 

그러므로, 현존재는 전체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항시 비전체성이며 미완이다.

 

비로소, 현존재는 종말에서 전체성에 도달하여 완성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가능성이 박탈된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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